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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군/관광명소

[진천군][관광명소][역사유적] 백련암지

by 충청북도 관광명소정보 2023.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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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암지

- 분류
역사유적

- 소재지역
진천군

- 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507-7

- 대표전화


- 모바일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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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시간


- 소개
백련암 터는 본디 길상사의 옛터로서, 일제강점기 백련암(白蓮庵)이란 작은 암자가 들어섰다가 이 암자도 없어지면서 빈터로 남게 된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각종 지리지에는 길상사가 태령산(胎靈山)에 있는 사찰로 기록되어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태령산이 길상산이라고 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의 기록에는 길상사에 대한 언급 없이 백련암이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한다. 길상사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대략 개항기인 고종 때까지의 법등이 밝혀져 있고, 일제강점기의 기록인 『상산지(常山誌)』에 처음 나타나는 백련암의 경우 길상산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들 기록을 종합해 보면 길상사와 백련암은 모두 진천의 서쪽 20리 지점에 있다고 하였으며, 백련암이 비록 10여 칸에 불과한 작은 암자이지만 ‘삼한고찰’ 또는 ‘나대고찰’이라 하여 역사가 매우 오래된 사찰로 소개되고 있어, 길상사와 백련암이 같은 위치에 있던 사찰임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상산지』에는 「영수사 괘불(靈水寺掛佛)」이 원래는 백련암에 있던 것으로, 절이 폐사되면서 옮긴 것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영수사 괘불」은 하단의 묵서명에 1653년(효종 4)에 제작된 것으로 되어 있어 원래 길상사에 봉안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영수사에 거주하는 승려에 따르면, 영수사 목조관음보살좌상(靈水寺木造觀音菩薩坐像)도 괘불과 함께 백련암에서 옮겨 온 것이라고 하므로, 목불상 역시 이전에 길상사에서 봉안했던 불상으로 생각된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봉암(鳳巖) 채지홍(蔡之洪)[1683~1741]이 이곳 길상사에 들렀다가 지은 칠언절구의 시가 『상산지』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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