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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공원
- 분류공원/유원지
- 소재지역
충주시
- 주소
충북 충주시 관아1길 21
- 대표전화
043-850-7303
- 모바일 전화
0438507303
- 충북나드리 주소 : 바로가기
- 소개
현재 관아공원의 위치는 성내동 일대다. 지명이 성의 안쪽 동네임을 방증한다. 큰 도로에서 벗어난 상가(관아골)와 나란하다. 담장 가운데는 지난 1996년 건립한 충청감영문이 대문 구실을 하며 그 위용을 뽐낸다. 충주목 관아 일대는 그에 앞서 1983년까지 중원군청(1995년 충주시통합)의 일부로 쓰이다가, 군청 이전 후 관아공원으로 조성됐다. 공원 내부에는 건물 세 동이 남았다. 안쪽으로는 충주목사가 집정하던 청녕헌(충북유형문화재 66호)이 두드러진다. 1870년 한 차례 소실돼 그해 남산 창룡사에서 이전한 건물로 대체했다. 오른쪽에는 중앙의 관리가 머물던 제금당(충북유형문화재 67호)과 그 업무를 보좌하던 산고 수청각이 위치한다. 두 동 모두 1870년 화재 후 다시 지었다. 한쪽에는 수령 50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가장 긴 시간 충주의 역사를 지켜봤으리라. 청녕헌 옆에는 순교자 현양비도 있다. 동헌에서 심문을 받고 무학당 주변에서 목숨을 잃은 천주교 순교자들의 넋을 위로한다. 간간이 기도하는 신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마당이 넓지만 관아의 자취라기에는 다소 초라하다. 아니나 다를까. 충주읍성 안내도에는 읍성의 사대문과 옛 관아 건물의 자취가 표시되었다. 남은 건물보다 사라진 건물이 많다. 관아공원을 돌아보고 나서는 읍성의 흔적을 쫓는다. 충청감영문을 나오면 충주예총회관이다. 1894년 갑오개혁 당시 경무청이 위치한 곳이다. 하지만 그 뒤편의 보이지 않는 옛터에 주목한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객사 남동쪽(성내동 453~458번지) 일대에 충주사고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고는 나라의 중요한 문서와 서적을 보관하는 장소다. 충주사고는 고려 시대부터 자리했다. 고려 《명종실록》은 한 부는 개경에, 나머지 한 부는 합천 해인사에 보관하다가 충주의 개천사로 옮겼다. 충주는 이후 줄곧 외사고 역할을 했다. 조선이 건국한 뒤에는 사고를 새로 지어 기록을 이전·보관했다. 그때 고려 역대 실록은 한양으로 옮겨져 《고려사》를 편찬하는 토대가 됐다. 조선과 고려의 역사적 가교가 충주인 셈이다. 충주사고는 임진왜란 때 소실됐지만, 그 사실만으로 값진 현장이다. 충주예총회관 왼쪽 길로 접어들면 관아골식당이 보인다. 옛 사령청 자리다. 관청의 심부름을 하는 사령들의 집무실이다. 앞쪽 담장에는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 동문 방향에 해당 한다. 오른쪽은 우두 접종을 위해 설치한 중계소(옛 아시아극장 뒤)와 병장기를 만들던 군기소 (국민은행 뒤)를 지나 서문 방향이다. 특히 군기소는 1896년 의병들이 군기를 빼앗은 장소 관아공원 뒤편의 한국통신 건물도 눈여겨볼 자리다. 북문 방면으로 충주목 관아의 객사가 있었다. 객사는 관리의 숙소이자, 임금의 전패를 모신 관아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객사 인근 북문 거리가 지금의 자유시장이다. 과거 성문 밖에 주요한 장터였던 점을 감안하면 충주읍성 시절부터 오일장 이 서던 자리라 할 수 있겠다. 예나 지금이나 북적대는 서민의 생활 터다. 그리 걷다 보면 충주의 중심가를 두루 거친다. 발끝으로 누려 맞이하는 충주의 역사다. 참고문헌과 자료 충주문화관광 : https://www.chungju.go.kr/tour/index.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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